그동안 재벌 오너 일가의 상속세 문제는 '탈세냐 절세냐'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놓여 있었다.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케이스들도 있지만 일부는 편법을 동원해 세금을 피하거나 상식 밖으로 적게 내는 등 '반칙 아닌 반칙'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했다. 최근 재벌 오너 일가의 상속세 문제가 다시 관심사로 떠올랐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덩치'만 놓고 볼 때 '역대급'이 될 공산이 크다.
LG그룹 오너 일가의 상속세 문제다.
지난 20일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하면서 후계자로 지목된 구광모 현 LG전자 상무의 4세 경영체제가 닻을 올린 가운데, 구 상무가 LG그룹의 최대주주로 올라서기 위한 주식 상속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상속세의 경우 피상속인 사망일(상속개시일)의 월말부터 6개월 이내에 관할 세무서에 신고납부해야 한다. 즉 오는 11월30일이 신고납부 기한이라는 이야기다. 세금을 신고납부해도 상속세는 부과고지 세액이기 때문에 추후 국세청의 상속세 조사를 통해 최종 확정 된다.
주식을 어떤 형태로, 어느 정도 규모로 상속받을지 여부, 또 다른 재산 및 사전 증여가 이루어진 재산에 대한 합산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구 상무가 얼마의 상속세를 내게 될 지는 현재로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역대 재벌들 상속세 얼마나 냈을까
국세청 개청(1966년 3월3일) 이후 가장 많은 액수의 상속세를 납부한 재벌가는 교보생명 신용호 전 회장의 유족들이다. 지난 2003년 신 전 회장이 타계한 후 유족들은 비상장주식, 부동산 등을 포함해 3000억원이 넘는 재산을 물려받은 후 주식을 물납하는 방식으로 약 1340억원의 상속세를 신고 납부했다. 하지만 국세청 상속세 조사 후 500억원 가량이 늘어나 최종적으로 1840억원의 세금을 납부했다. 이 과정에서 유족들은 물납한 비상장주식에 대해 증권거래세를 부과한 국세청을 상대로 조세불복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9월 별세한 오뚜기 함태호 명예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상속받은 오뚜기 함영준 회장은 1500억원 규모의 상속세를 신고했고, 5년 동안 나누어(연부연납) 하기로 했다. 당시 오뚜기는 상속세 성실납세로 '갓뚜기'라는 애칭을 얻으며 착한 기업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대한전선(1355억원), 태광산업(1060억원), 세아그룹(1000억원) 오너 일가 등도 1000억원 이상의 상속세를 냈다.
지난 1998년, 2001년 각각 타계한 SK그룹 최종현 전 회장 유족들과 현대그룹 정주영 전 회장 유족들도 각각 730억원, 302억원의 상속세를 납부했다. 한화그룹 김종희 전 회장으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으면서 한화그룹 총수가 된 김승연 회장도 당시로서는(1981년) 상당한 금액인 277억원의 상속세를 납부했다.
상속세는 아니었지만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은 아버지인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으로부터 지난 2006년 경영권 승계 차원으로 7000억원 규모의 지분을 증여받으면서 3500억원 상당의 주식을 현물로 납부(증여세), 대표적인 '모범적 납세 케이스'로 기록됐다.
'상속인 구광모', 상속세 얼마 낼까
LG전자 구광모 상무가 고(故)구본무 LG그룹 회장의 ㈜LG의 지분을 모두 상속받을 경우 납부해야 할 상속세는 얼마일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고인이 소유하고 있는 LG그룹의 지주회사인 ㈜LG의 지분은 11.28%(1945만8169주)다. 주식 상속시 과세표준 계산에 활용하는 주가는 고인이 사망한 시점을 기준으로 전후 2개월씩 총 4개월 간 주가의 평균 금액이 기준점이 된다.
지난 3월20일 기준 1주당 8만9300원이었던 ㈜LG의 주식은 등락을 거듭하며 5월23일 현재 1주당 7만7400원이다. 오는 7월19일 주식의 가격이 얼마냐에 따라 평균 금액은 달라지는데, 대략 8만원을 주당 평균 가격으로 가정하고 최대주주 할증(특수관계인 상속시 20%)을 적용하면 고인이 보유한 지분의 가치는 1조8600억원 수준이 된다. 이를 몽땅 구 상무가 상속받는다면 최고세율 50%이 적용, 대략 9350억원의 상속세액이 계산된다.
현행 법상 상속으로 인해 재산을 취득한 상속인은 사망일(상속개시일)의 월말로부터 6개월 이내 관할 세무서에 상속세를 신고해야 한다는 점과 (신고납부 기한 11월30일) 제때 신고했을 경우 적용되는 5%의 신고세액공제 혜택을 감안하면 납부세액은 약 8883억원 수준이 된다.
다만 현재 ㈜LG 지분 6.24%(1075만9715주)를 보유, 3대 주주인 구 상무가 지분 전체가 아닌 4~5%만 상속받더라도 그룹 경영권을 손에 쥐는데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일각에서는 과도한 규모의 주식 상속에 따른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미망인(김영식)과 두 딸(구연경, 구자영)에게 분산해 상속한 방법을 유족들이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상속인 구광모', 자금 마련은 어떻게?
사실 재벌들도 과도한 규모의 상속세를 한 번에 내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상속세를 내야 하는 사람들의 일시적 자금압박을 덜어낼 수 있는 방법으로 물납과 연부연납이 있다.
물납은 상속세를 현금 대신 부동산이나 비상장주식 등으로 납부하는 것인데, ㈜LG는 상장주식이기 때문에 물납 대상이 아니다. 부동산 등 다른 재산들을 상속받아 이를 물납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연부연납을 선택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상속세 연부연납이란 낼 세금의 6분의 1 이상을 신고·납부(상속세 신고기한 6개월 이내)하면서 먼저 내고 나머지 금액을 5년 동안 나눠 낼 수 있는 제도. 단 상속인 전원이 신청해야 하고 보험증권, 부동산, 주식 등 납세담보물이 필요하다.
가령 상속세 9000억원에 대해 연부연납을 신청했다고 치자.
이 때 처음 1500억원을 납부하고 나머지 7500억원을 5년 동안 나누어 낼 경우 가산금(남은 전체 세금×0.018)까지 더해 첫해 1635억원, 이듬해 1608억원 등을 납부하는 형태다. 해마다 이자 부담을 떠안는 리스크가 있지만, 당장의 자금압박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더 도드라진다.
또한 가산금의 이자율은 매년 시장금리 추세를 반영해 손질되고 있어 줄어들 여지도 있다. 물론 늘어날 수도 있다.
현재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상속재산은 지분이 전부다.
유족들이 어떤 재산을 추가로 상속받고 상속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지 여부는 유족들만이 알 수 있고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지분 상속에 따른 상속세액이 워낙 크기 때문에 상속세 재원은 구 상무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 등을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재벌들이 선호하는 '주식담보대출'을 활용할 수도 있다. 주식담보대출은 재산권만 담보로 설정하고 의결권은 인정되기에 경영권 행사에도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통상 주식담보인정비율이 50~70%라는 점을 감안하면 6000억원 가량을 대출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