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속세 논쟁과 미래-
페이지 정보
작성일작성일 11-02-22 18:10 조회11,801회관련링크
본문
워렌 버핏과 한국 부자들의 차이점(?)
- 상속세 논쟁과 미래-
월 스트리트 저널이 만일 인디애나 존스가 경제학자였다면 바로 스티븐 래빗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괴짜경제학(Freakonomics)에 대한 서평을 썼다. 이후 시카고 대학의 스티븐 래빗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세간의 명성과 돈을 한꺼번에 얻었다.
그는 기존의 관념을 통렬하게 부수면서 세상사(世上事)는 모두 인과관계를 갖는다며 독특하게 사회현상을 설명한다.
한가로운 중국 시골 마을의 나비 한 마리가 일으킨 작은 파장이 남미에서 허리케인으로 바뀌는 것을 입증해내듯 무관해 보이는 사건들을 엮어 서로 인과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1990년대 초 미국은 범죄의 꾸준한 증가세에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총격 사망은 일상화되고, 차량 탈취, 마약 거래, 강도, 강간 등 강력 범죄는 일상의 동반자였다. 범죄의 주범은 다름 아닌 결손 10대들이었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향후 범죄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1995년 범죄학 전문가 제임스 폭스가 미 검찰청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후 10년간 범죄는 곱절로 증가할 것이라는 매우 우울한 전망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국 사회의 범죄율은 그후 계속 하락해 갔다. 미국 전역에서 각종 범죄가 고르게 줄기 시작했다.
제임스 폭스의 전망이 있고 나서 5년 후 10대들의 살인 범죄율은 50% 이상 줄었다. 2000년에 들어서는 살인에서부터 차량절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범죄에서 과거 35년 중 가장 낮은 수준까지 범죄율이 하강했다.
범죄의 도시 뉴욕도 1990년에 2000여건이 넘던 살인 사건이 2005년에는 540건으로 줄어 들었다. 전문가들은 말을 바꾸기에 바빠졌다. 예견이 빗나가게 된 배경을 결과론적이지만 경제회복, 총기법안 강화, 경찰의 열성적인 치안 강화 등에서 찾았다.
언론은 이런 주장을 열심히 퍼 날랐고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치솟던 범죄율이 경제와 치안강화로 갑자기 소강 상태가 되었다는 설명이 대중의 주된 상황인식으로 자리 잡았고, 달리 반박할 논리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런 진단이 표피적이고 결과론적이라는 반론을 스티븐 래빗 교수가 내놓았다. 1990년대에 이르러 범죄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한 근본적인 원인(遠因)은 그로부터 20여 년 전인 1970년대 달라스에 살던 가난하고 이름없는 노마 맥코비라는 한 젊은 여성의 사건에서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녀는 21살에 이미 두 아이를 낳아 입양 보냈고 또 한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주에서는 임신중절은 불법이었다. 어리고 가난한 그녀는 원치 않는 임신의 경우 낙태를 허용하자는 대의명분에 딱 맞는 모델이 되었다. 의도하지 않게 그녀는 낙태 집단소송에 대표 원고가 되었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가면서 1973년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다.
그간 결손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총을 들고 길거리를 배회하며, 감옥에 가는 일이 허다했는데 판결이 나온 1973년 이후 미혼모, 가난한 여성, 십대 임신부 등 수백만 명이 매년 임신중절을 통해 대책 없이 태어나서 돌봄을 받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자라나는 불행한 출산을 피하게 되었다.
판결 후 20년이 흐르자 결손아동들이 줄면서 범죄율은 현저히 꺾이게 되는데 여성들이 낙태의 자유를 구하는 소송이 예기치 않게 범죄의 예방에 기여하는 사회적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괴짜경제학은 법 없이도 잘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선량한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세상사가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결코 무관하지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보다 나은 세상을 지향하고, 우리의 손자가 더 합리적인 세상에서 살게 하려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의 일들이 미래의 손자 사회를 규정하는 것이라는 소명의식을 갖게 한다.
하물며 세정과 세제가 화두가 되는 경우에는 국민 모두에게 이해관계가 직결되는 예민한 사안이어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경제부처 수장을 지내 분이 다시금 상속세 폐지론을 다시금 들고 나와 세간의 이목을 끈 바 있다.
최근 어느 포럼에서 상속세를 내라고 하니 해외로 자본 도피가 일어나고 결국 우리 경제를 지키지 못하게 된다. 이번 국회에서 상속세율 인하안이라도 통과되어야 한다는 발언도 나왔다고 한다.
MB 정부 이후 자산가들과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상속세 폐지의 최대 호기로 보는 듯하다. 각종 단체들이 한결 같이 상속세가 기업을 대대손손 물려주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에 부자 나라 미국에서는 부자들이 앞장서서 상속세를 없애지 말라고 외치고 있어 현격한 대조를 이룬다.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인 빌 게이츠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그러하다.
상속세야말로 부자가 내야 할 소명이니 없애지 말아 달라는 운동에 헤지 펀드의 제왕 조지 소로스, 언론 재벌 테드 터너, 록펠러 가문, 루스벨트 가문, 영화배우 폴 뉴먼 등 내로라하는 거물들이 나섰다.
워렌 버핏은 기업인이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선수들이 2020년 올림픽에서도 자신들의 장남으로 국가대표선수단을 꾸리겠다고 우기는 거나 매일반이라고 풍자했다.
소로스 회장 역시 "우리는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세상에 살고 있고 이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에 유익하다고 볼 수 없다. 세금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유쾌하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금이나 죽음을 폐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독 한국인만 재산의 대물림에 집착하는 독특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물론 유전자보다는 사회적 인식과 문화가 나라마다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나라마다 서로 다른 사고방식은 그 사회가 공유하는 인식과 사회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 주어야 한다고 찰떡처럼 믿는 부모들과 당연히 부모 재산은 자기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자녀가 함께 사는 사회가 시간을 두고 진화해 생전에 지속적인 기부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Community에 기여하고, 헌신하는 시민사회가 형성될 때 재산의 증가와 부모 방문 빈도가 정비례의 관계에서 벗어날 것이다.
물론 부자들이 평소에 탈세하지 않고 정당하게 소득세를 내고 부를 형성하였는데 거기에 또 상속세를 매기면 절약하고 근면한 죄를 묻는 격이 되고, 유흥 시민보다 차별해 이중과세를 하는 결과가 된다는 주장은 유효하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상속세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실제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상속세를 두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은 다소 다르다. 적지 않은 한국의 부자들이 개발독재의 특혜에 편승하였거나, 해방 이후 단 한번도 폭락해 본 일이 없는 부동산에 투자해 큰 부를 형성한 이들이 많았는데 그 시절에는 세원관리 인프라가 빈약해 자발적, 비자발적 세원탈루가 많았다.
게다가 당시에는 자산소득(capital gain)에 대한 과세제도도 소극적이어서 부동산 폭등 등으로 얻은 막대한 자산소득(capital gain)에 대해 응분의 과세를 하지 못했다. 결국 근로소득 등 타 소득과의 과세형평에 실패한 측면이 크다.
봉급쟁이들의 유리지갑에 대하여는 철저히 누진 과세한 반면 자산가들의 막대한 부동산 양도소득에 대하여는 기준시가나 공시지가로 과세했다. 경제개발시대에 지가는 폭등하는데 기준시가는 겨우 시가의 10~20% 수준이었으므로 여기에 소득세율 30%를 적용하여도 실효세율은 3~6%에 불과해 투기소득의 94%~97%가 법으로 정당하게 감면되는 꼴이 되어버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속세 폐지 주장이 국민들의 눈에는 설득력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소득세를 제대로 내지 않았으면 2차적인 보완세인 상속세라도 제대로 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따라서 상속세 논란이 가열되어도 당분간 상속세 폐지는 힘을 얻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현행의 고세율에 대하여는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50%라는 고세율은 축적재산의 반절이 국유화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인간의 소유본능에 대한 잠재적 도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세율의 심리적 최고 임계치는 33% 수준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조세법의 석학 최명근 교수의 언급이 있었다. 애써 모은 소득이나 재산의 삼분의 이는 자신이 처분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맥시멈 삼분의 일만 나라와 사회를 위하여 내놓게 하는 것이 황금분할률이라는 것이다.
납세자의 납세의식은 지속적으로 개선되어가고, 세제 역시 납세자 우호적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장래 소득세를 꼬박꼬박 낸 후 모은 재산에 또 다시 고율의 상속세 과세를 하는 경우 다수 시민들이 부당하다고 여기는 시점이 언젠가는 분명 올 것이다. 그때 가서 상속세를 폐지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처럼 유산 전체를 일괄해 누진 과세하지 말고 장래에는 상속 받은 사람을 기준으로 과세해 인별로 소득배분에 대한 누진효과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상속 재산의 평가일도 지금처럼 기계적으로 사망일 현재로 고정하지 말고 세금을 내야 하는 상속세 신고일 현재의 재산가액으로도 평가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할 것이다.
상속(사망) 개시 후 신고일까지의 6개월 사이에 급락한 주식이나 재산에 대해 과대평가를 하여 세금을 내야 하는 현행 모순점을 해결해주기 위해서이다.
2010년 8월 10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